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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천문대를 공격하라
 
2021년 11월 4일 – 2021년 11월 28일
13시 – 19시
사가

작가: 구자명, 이의록, 조해나
기획: 엄제현
협력: 사가
디자인: 김소희, 황휘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바빌로니아 목동들이 수놓은 밤하늘의 별자리는 우주 공간을 2차원 캔버스로 간주할 때 가능했던 시각 기반의 유희로, 우주론이 3차원으로 상승한 순간 고대인의 낭만적 자취로 퇴조하였다. 반면 수없이 많은 신화, 전설, 영웅, 괴물, 이념, 서사 등을 탄생시키던 지구는 황폐한 플랫으로 변모하였고, 만물은 스크린 안으로만 수렴하는 흐릿한 궤적 내지는 표상의 문제를 지난하게 만드는 잔상으로 전락했다. 천공과 대지가 이룬 차원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를테면 현 상황은 인류로 하여금 지궁도地宮圖를 상상해내도록 주문한다.
 
지궁도는 동시대 미술에서 긴요하게 다루어지는 정치적 사안들에 호응한다. 그것은 현재 미술계가 천착하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불쑥 개입할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궁도의 원관념적 짝패인 천궁도를 뜻하는 horoscope는 '시간의 관찰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오로스코포스’로부터 유래하는데, 점성술이 운행하는 천체의 특정 시점을 포착해 운명(시간)을 가늠했다면 지궁도는 포스트-인터넷, 포스트-리얼리티, 수퍼플랫 등의 수사들이 묘사하는 당대의 허수적 공간 자체를 유영하면서 ‘처해 있는 현실’이라는 이 시간대를 다단하게 표상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시공간에 대한 유무형의 탐색을 촉발하면서 이종의 작도법을 제시한다.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빛의 속도를 절대적 상수로 시인할 때 용납되듯, 공동체의 안위가 -1의 적대를 상정하면서 효과적으로 보존되듯, 상품이 화폐를 상품 중의 상품으로 등록하면서 제 스스로를 관철하듯, 천궁도가 지구로 응축된 시야를 통해 회전하듯 지궁도 또한 어떤 축 x를 통해서 작동할 것이다. 그 x의 정체는 불분명하기에 우리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타격하고자 한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제 정수리를 지나는 자오선에 본초의 격을 부여해 행성의 시간을 정벌하고 공간을 호령하는 날실 중의 날실, 시공간의 영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준은 애초부터 빗나가 있다. 현실을 직조하는 추상을 담지하는 대상물이 없다면 시공간은 사라지겠지만 그것은 천문대가 품은 신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커다란 왜상적 은유, 다시 말해 시공간의 당대적 양태와 효과, 그것을 구성하는 중층적 네트워크를 포괄하는 낱말에 해당한다. 시공간에 관한 작가들의 고민은 각자가 계측한 좌표의 영점을 향해 가속한다. 문제를 표상적-핵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시공간 자체를 사유할 장을 열어젖히고, 붕괴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현재를 슬쩍 잡아당겨 세계상을 교란시킬 작정으로.
 
어쩌면 우리의 탄환은 너무 늦게 채비되었다. 국제도량형총회(CGPM)에 의해 만물의 척도들이 허물을 벗고 추상계로 우화하며 절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본초자오선의 평균태양시인 그리니치 평균시 또한 1972년 협정세계시로 이행하였다. 이는 전 세계의 400개 이상의 원자시계의 시간평균값으로 구체적인 대상시가 아닌, 차이를 통해 절충되는 추상시이다. 전략은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 앞엔 지구상의 원자시계를 몽땅 폭파시키던가, 그리니치시와 협정세계시 사이의 균열 x를 공격하던가 하는 두 선택지만이 놓여있다. 우리의 대답은 후자로 기운다. 우리는 질문을 탄도학적 절차에 따라 쏘아냄으로써 문제를 언어의 군사학을 아우르는 영역으로까지 비화시킨다. 표적 x는 미지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대상의 존재를 표지하는 감지의 기호이다. 우리는 바로 이 x의 존재로 인해 사실에 근접할 동기를 발견한다.
 
지궁도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상을 획득한다. 작가들이 쏘아낸 질문의 궤적이 인간의 인식과 현상들을 관통하며 별자리에 대응하는 가상점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궤적은 플랫한 세계에 빗금을 긋는 일이 되면서 이내 스크린의 균질성을 대질하고 지구의 비균질성을 지각시킬 촉매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오로지 파괴되기 위해 그려지는 개념적 왜상이자, 자세를 고쳐 앉을 리얼리티의 태명인 지궁도를 들여다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