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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랭귀지

2021년 4월 1일 – 2021년 4월 25일
13시 – 19시
사가

작가: 김연재, 양현모, 유현경, 좌혜선
기획: 정하영
디자인: 히가 쇼헤이
주관: 사가
후원: 서울문화재단

전염병 이후 새삼 몸의 존재를 의식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시작은 결국 우리의 몸임을 되새김질하는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바디 랭귀지»는 시각 예술에서 끊임없이 다뤄온 인간의 몸이 오늘의 맥락에서 지니는 의미를 들여다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유현경, 좌혜선, 양현모, 김연재는 매체가 아닌 소재로의 몸, 그리고 그 몸이 만들어내는 몸짓에 주목한다. 이들의 작업 형식 안에서 신체는 각각 나–타인, 개인–사회, 현재–과거, 그리고 현실–상상 사이의 대화를 끌어낸다.
 
한동안 유현경은 모델이라는 특정한 타인을 회화로 구현하는 작업 속에서 타자를 마주한 자신의 태도를 반추하는 방식으로 그의 정체성을 쌓았다. 2017년 작 ‹연수 6›는 2008년 ‹일반인 남성 모델› 시리즈에서 이어진 십여 년 여정의 끄트머리에 놓여 있다. 초기의 의도적인 형태 왜곡에서 벗어나, 보이는 대로의 신체를 담아 내는 나름의 “리얼리즘”을 구사하며 작가는 정체성 형성의 도구가 아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타자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주체와 객체를 넘나드는 모델 연수는 이 변곡점에 있다. 그의 다리 벌린 자세는 당혹스러운 성적 어필에서 어느 순간 아이의 천진함으로 전환되며, 작가는 이 해소의 과정을 캔버스에 담는다. 머리 위로 들어 올렸던 부자연스러운 팔을 편히 내려놓듯이.
 
좌혜선은 오늘날 개인이 사회와 맺고 있는 무력한 관계의 근원을 몸의 물성에서 찾는다. ‹냉장고, 여자›의 밥 짓는 여성의 구부정한 몸에서 ‹monster dancing› 속 산재 피해 노동자의 뒤틀린 몸까지, 좌혜선은 사회적 조건 안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인간의 몸을 그렸다. 신작에서 그는 이러한 조건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인체의 생물학적 한계를 짚는다. 우리의 신체는 자생할 수 없기에 인간은 타인을 수단화하는 “포식자”로 변모한다. 평면 위 작가가 설정한 벽과 바닥은 파편화된 인체에 중력과 공간적 제약을 동시에 부여하며, 분채로 이뤄진 신체의 물성에 주목하게 한다. “끈적이고, 줄줄 흐르고, 따끔한” 것과 결합한 몸뚱이는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팽팽한 물리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양현모의 ‹Wrestlers› 연작에서 몸은 미술사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엉겨 붙은 리드미컬한 나체의 레슬러는 동성애적 코드 혹은 정반대의 남성성의 상징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양현모 에게 신체는 회화의 요소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생생한 소재로 존재한다. 그의 참조물은 올림픽 장면을 담은 고대 그리스 자기에서 에드워드 머이브리의 사진에 이른다. 캔버스의 가장자리에서 시작되는 인물의 윤곽선은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계산된 “안무”를 가능케 하며, 색조와 명암은 세밀한 변주를 위한 장치이다. 동시에 단수가 아닌 복수의 나체를 얽어 형태의 모호함을 강조하고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포함한) 신체 말단을 잘라내는 전략을 구사하며 말이다.
 
한편 김연재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대부분이 죽은 평행 우주의 또 다른 지구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룰까?”라는 SF 네러티브에서 ‹인간 되기›를 시작한다. 작가의 프로스테시스*는 기계로 대체한 몸을 유기체를 닮은 장식물로 치장한다. 결 좋은 피부를 만드는 인공물인 스타킹과 모피를 떠올리게 하는 토끼 털은 온전했던 인체와 의복에 대한 향수에 기인한다. 이 이질적 육체는 인간의 생물학적 정의를 묻는 동시에 도나 해러웨이의 소중한 타자성과 맞닿는다. 개와 인간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끝내 공존하듯, 타자의 범위를 무한히 넓혀 놓은 SF 장르 속 새로운 인간과 우리는 소통할 수 있을까.


* 프로스테시스 Prosthesis. 한 단어에 다른 음절을 덧붙인다는 의미에서 유래해, 잃어버린 신체 일부를 인공물로 대신한다는 의학 용어로 확장되었다. 현재 일반적인 인간-기술의 상호작용에서 덧붙임, 대신함, 연장, 향상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