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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6일 – 2022년 11월 27일
13시 – 19시 (휴관 없음)
사가

작가: 영배
글: 이문정
디자이너: 이승현
주관·후원: 사가

예술은 제게, 편협함과 불명료함을 넘어서서, 모든 사물을, 가장 작은 것을 가장 큰 것처럼 이해하고, 그런 꾸준한 대화 속에 모든 삶이 지닌 본래의 소리 없는 원천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개개인의 노력으로 나타납니다. 사물의 비밀은 그 개인의 내부에서 그에게 고유한 가장 깊은 느낌과 융해되고, 그것이 마치 자신의 동경이 되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렇게 그에게 소리를 냅니다. 이 내밀한 고백의 풍부한 언어는 아름다움입니다.*

작가 영배는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는 사물을 주제이자 재료로 선택한다. 선택의 기준은 무작위적이라 할 만큼 우연적이고 주관적이지만, 기능성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앉을 수 없게 방치된 의자, 육지로 나온 부표, 길 위에 놓인 문. 작가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능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사물이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놓여있는지 질문하며 반복적으로 관찰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사물 혹은 이미지를 수집해 미술의 영역으로 옮겨놓는다. 작품이 아니라면 무엇도 아닌 게 되어 버린 예술적 오브제들은 즉각적으로 “형태와 기능이 분리된 사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에 따르면 “사물의 형태나 의미는 기능과 밀접하다.” 작가는 “자신에게 부여된 기능을 하지 않는 사물의 형태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기능이 사라진 사물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고심했다.”**

일례로 ‹하나의 의자 두 개의 다리 세 개의 동그라미›(2022)에서 영배는 매번 다른 위치에, 다른 방식으로 놓여있는 의자의 이미지를 채집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처럼 매번 옮겨놓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몇 년 전부터 마주치는 의자이다. 전시된 35장의 사진은 모두 하나의 시점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의자가 프레임 안에 온전히 담기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작가는 의자가 더 잘 보이게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구름은 보이지 않았다› 시리즈(2022)에는 ‹하나의 의자 두 개의 다리 세 개의 동그라미>에서 붙잡지 못했던 이동의 과정이 담겼다. 바람을 동력 삼은 비닐봉지는 조금씩 흘러간다. 그리고 포착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게 여겨지는 이 일상 속 변화가 상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창작의 동력이 된다.

작가는 최대한 덤덤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꼼꼼하게 몰입하여 지각하고 기록하는데 이는 일정 부분에서 ‘사물시’를 떠올리게 한다. 설명문이 아닌 시이기에 영배는 대상을 충실히 기록하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물이 스스로 존재 의미를 소유한 예술적 대상이 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느끼고, 알아가며, 묘사하는 행위에 더해지는 작가적 해석이다. 결국 가시적인 지점에서부터 시작한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의식 속에 존재하게 된 사물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까지 드러낼 수 있는 표현. 의자와 비닐봉지에서부터 지구본, 미러볼, 풍선에 이르는 전시장의 사물들은 연상과 상상을 거치며 시적 사물로 변모한다. 그렇게 외부 세계와 내면의 종합이 일어난다.***

수집한 풍선을 이용한 ‹her›(2022)와 ‹공›(2022)은 이러한 변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바람이 빠져 본래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풍선을 가져와 정반대되는 외관의 작품을 완성했다. 길에서 주운 바람 빠진 풍선들로 ‘her’의 모양을 만든 ‹her›는 말 그대로 납작하다. 실재했던 풍선의 형상을 본떠 제작한 풍선으로 커다란 구를 만든 ‹공›은 완벽한 원형(입체)이다. 풍선은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동시에 함유하는 양가적인 대상이다. 가볍게,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풍선. 그리고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곧 바람이 빠져 추락할 풍선. 풍선에 적힌 희망의 글귀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상승을 기대했기에 하강이 더 쓸쓸하다. 풍선은 재사용이나 복구도 힘들어 일회용품에 가까운 찰나의 사물이다. 풍선이 사용되는 파티, 축제, 공연, 시위 역시 일시적이다. 폭죽이 터지듯 반짝였다가 이내 사라진다. 작가가 선택한 ‘공’은 사물로서의 공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공(空)일까? ‹공›을 구성하는 풍선들조차 납작하게 눌린 것을 보니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작가는 풍선이 상징하는 꿈과 희망, 흥분, 즐거움이 영원하지 못한 현실, 그 의미가 진부하고 얄팍하게 소비되는 진실을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미지 시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오늘날 세상의 현실은 표피적인 이미지로 읽히고 이미지는 실재하는 사물을 압도한다. 이렇듯 작가는 이미지가 본질이 된 시대, 평평해지는 상상력에 대한 문제의식까지 담아낸다.

한편 ‹O›(2022)는 지구본, 부표, 공, 미러볼처럼 실재하는 둥근 사물들로 이루어졌다. 작가는 여기에 “the world is everywhere and here”라고 적었다. 천장에 매달린 채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글자를 완벽히 읽기는 쉽지 않은데, 이런 상황을 만든 이유는 작가가 선택한 사물이 고정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의미를 생산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른 사물이지만 모두 ‘O’로 보인다. 제목이 뜻하는 것은 ‘동그라미의 O’가 될 수도 있고 ‘틀리지 않다, 어울리다를 뜻하는 맞다의 O’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에서 다양함을 찾아낸다. 때로는 다름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존재들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증명하듯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작용해 충만한 의미를 끌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객관적 상관물과의 관계 맺기를 통한 작가적 표현은 점차 심화된다. 작가는 유리 캐스팅으로 택배 상자를 만들고 ‹예언›(2022)이란 제목을 붙였다. 풍선 못지않게 짧은 기능적 수명을 가진 택배 상자는 그 안의 내용물과 달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배송 과정에서 던져질 때도 있다. 그러나 유리는 던질 수 없다. 그 안에 무언가를 담아 보호할 수도 없다. ‹예언›은 자신이 보호받아야 하는 상자이다. 상상력은 이처럼 고정된 맥락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적 이미지 그리고 물질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Happy birth day›(2022)는 2018년 우연히 발견한 달력에서 시작되었다. 한 가정의 대소사가 적혀 있던 달력을 보며 작가는 가족들이 모인 따뜻한 시간을 상상했다. 한 해가 끝나면 달력은 더 이상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러나 흘러간 시간을 환기하고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이에 작가는 시간의 조각, 기억의 조각을 연결한다는 마음으로 분홍빛의 달력 이불을 만들었다. 예술적 탐구는 “생생한 접근에 관련된, 삶의 진지함과 수고 가운데 완성되는 움직임에 관련된 경험”과 같다.***** 작가는 삶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형식을 그려낸다. 어떤 해답에도 만족하지 않으며 가장 침묵하는 사물에 다가간다.******

이번 전시의 마침표와 같은 ‹나침반›(2022)은 형광등, 나팔, 장난감 칼집, 그리고 그것들과 빛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별 모양의 그림자로 구성된다. 작가는 사물을 통해 사라지는 것들의 빛나는 가치를 조명해보겠다는 생각을 투명하게 담았다.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는 별이고 빛이다. ‹나침반›이 고요하지만 단호하게 보여주듯 작품은 “어둠 위에 반짝이고, 나타나게 된 그런 어둠의 반짝임이며, 어둠을 앗아 개화 최초의 밝음 가운데로 데려가는 빛, 하지만 또한 그 본질이 어둠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것으로 다시 닫히고, 어둠을 그 자체로 이끌고 가 삼켜 버리는 데 있는, 그 절대적 어둠 속에 사라지는 빛”*******이다. 그렇게 사물에 시적 공간이 부여된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혜순(역), 「현대 서정시」, 『릴케 전집 11, 예술론(1893-1905)』, 책세상, 2021, p. 104.
** 작가 영배 인터뷰, 2022년 11월 10일.
*** 김재혁, 「릴케 고유의 “앞세우기” 이론을 통한 “사물시” 분석」, 『독일문학』, 제77집, 2001, pp. 91-94.
**** 작가 영배 인터뷰, 2022년 11월 10일.
***** 모리스 블랑쇼, 이달승(역), 『문학의 공간』, ㈜그린비출판사, 2019, p. 115.
******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21, p. 104.
******* 모리스 블랑쇼, 2019, p.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