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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 2022년 1월 28일
10시 – 20시 (휴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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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허수연
기획: 사가
글: 이예림
공간 디자인: 용민박 스튜디오
그래픽 디자인: 최재훈
주관·후원: INGA

귀엽고 작은 내 유리병보다 좋은 유리병은 세상에 없다네.
 
범람하는 정보 부스러기와 알고리즘은 우리의 매일을 추적한다. 이는 디지털정보 내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탐색하는 대중의 능력을 갉아먹으며 자명한 가치들을 불확실한 것으로 만든다. 동시에 여러 가짜 정보들을 진실과 혼재시켜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을 유예시킨다. 인지능력의 상실로 진실은 뒤편으로 밀려나고 쾌락은 추동된다. 이런 감시와 유희가 얽힌 매혹적인 디지털 세계는 우리에게 양가적인 열망을 심어준다. 데이터의 세계에 유영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개방하고 싶은 탐닉적 욕구, 반면 사적인 영역에서는 외부로의 감시를 차단하고 노출의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이 그것이다. 주조된 동전 같은 이 양면성은 디지털과 실제의 세계를 배회하며 끝없이 우리와 시스템 사이에서 부대낀다.
 
나의 병이여, 왜 나는 태어났을까요?
그대의 품속에서는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항상 좋았답니다.
왜냐하면 귀엽고 작은 내 유리병보다 좋은 병은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디지털 시스템에서 드러나지 않은 감시자의 권위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그들의 논리에 순응시킨다. 주어진 환경에의 순응은 현재의 안온함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1932년에 집필한 『멋진 신세계』는 600년 후 미래를 가상한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모두가 계급에 맞는 ‘병’에서 부화한 세계국 사람들은 세계정부의 통제 속에서 고통과 갈등이 거세된 채 감시자가 짜놓은 ‘멋진’ 문명화된 세상을 살아가며 위와 같은 노래를 부른다. 이 비판의 부재와 인지 없는 행복은, 구조적으로 내재된 감시와 통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접근이 불가하고 대중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겨난다.
 
허수연은 이번 작품 ‹safe house›를 통해 동시대에 만연한 디지털 감시 체제가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작품에는 투명한 유리 집에 종이죽으로 반죽된 곰 인형이 감시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감시자는 다층적 장치를 통해 나타나는데, 첫째는 유리 벽 밖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cctv의 존재이고, 둘째는 우리가 육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은밀한 곳에 숨겨진 카메라의 존재이며, 다른 하나는 이 현장을 지켜보는 관객의 눈이다. 관객의 눈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투명한 유리로 감시 대상과 공공연한 감시자(cctv), 심지어 집 안에 숨겨둔 은밀한 카메라워크 또한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지적 시각을 갖는다.
 
감시의 대상과 주체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관객의 지위는 ‘대상이 내가 아님’에서 오는 천진한 안정감을 주며, 동시에 은밀한 감시의 ‘대상이 내가 될 수 있음’에서 오는 경험에서 비롯된 불안을 마주하게 한다. 천진한 안정감이란 우리가 디지털의 혼재된 정보 속에서 스며들어 언제나 감시와 통제의 가능성을 간과했던 까닭이다. 관객이 바라보는 cctv는 언제든 고개를 돌려 관객의 행동을 감시하고 그것을 우리가 모르는 디지털 세계 어딘가로 전달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는 우리가 감시자에서 전복되어 다시 감시의 대상으로 언제든 재편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손과 머리가 향하는 모든 곳의 저 눈은 지금도 우리를 응시하고 있으니.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안정효(역), 서울: 소담출판사, 2019, p.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