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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탄틴

2022년 9월 1일 – 2022년 9월 25일
13시 – 19시 (월, 화, 수요일 휴관)
사가, 산수싸리

작가: 99betaHUD
기획: 99betaHUD(기예림, 한지형)
사운드 협업: Max Eilbacher
대화/글: 박재용
포스터 디자인: 홍정희
포스터 3D 디자인: 기예림
주관: 사가, 산수싸리
후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계 일꾼 전성시대
애니메이션 시리즈 ‹우주 가족 젯슨›(1990)에는 집안일을 담당하는 로봇 ‘로지’가 등장한다. 앞치마를 두른 ‘로지’는 젯슨 가족을 쫓아다니며 집안일을 참견한다. 가려운 등을 긁어주고, 요리를 하는가 하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기도 한다. 인간의 모습을 닮은 잔소리꾼 로봇 ‘로지’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등장하던 1990년대, 로봇 산업 역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1992년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MIT의 ‘다리 연구소(Leg Lab)’에서 독립해 기업이 되었고, 1994년에는 ‘CMU 로보틱스’가 만든 육족 보행 로봇 Dante II가 알라스카의 스퍼 화산에서 가스를 채취했으며, 이듬해인 1995년에는 수술용 로봇 팔을 만드는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설립되었고, NASA가 ‘패스파인더’ 미션을 통해 화성에 ‘소저너’ 로봇을 보냈으며, 1997년에는 1986년부터 인간형 로봇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한 혼다가 8번째 프로토타입인 ‘P3’를 선보였다.

산업 현장이나 극한의 환경에서 작동하던 로봇들은 대체로 기계 생명체와 같은 모습으로 각 상황에 맞는 최대의 효율을 추구했다. 화산 가스를 채취하기 위한 로봇은 무게중심을 잡는데 유리하도록 다리가 여섯 달린 모양이었고, 화성에 투하된 로봇은 울퉁불퉁한 지형을 효율적으로 이동하며 태양열로 전기를 충전하도록 높낮이가 다른 바퀴 여섯 개 달린 박스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자동차 공장의 로봇들은 애초에 인간이 할 수 없는 동작을 목표로 만들어졌고, 덕분에 유려하게 움직이는 포크레인처럼 보였다.

인간을 흉내내는 기계들
로봇 구동에 필요한 AI 관련 기술이 발달하고 로봇 산업이 점차 더 성숙해짐에 따라 (국제 로봇 연맹에 따르면 2017년에는 사상 최초로 전 세계 산업용 로봇 판매량이 40만 대에 이르렀다), 점차 우리 생활과 가까운 소비자 대상의 식품 산업에서도 로봇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로봇이 뒤집어 주는 햄버거 패티, 로봇이 내려주는 커피, 로봇이 튀겨주는 튀김, 로봇이 말아주는 스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적으로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요리를 수행하는 로봇들은 인간을 흉내내며 진화했다.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로봇팔을 놓고는 뒤집개를 연결해 불판 위의 패티를 뒤집게 하거나, 고온에서도 변형되지 않는 고무를 덧댄 집게로 튀김망을 흔들게 하는 식이었다.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드립 커피 내리기도 문제 없었다. 이미 자동차나 항공우주 산업에서 기술을 고도화한 로봇팔에게, 주전자의 균형을 잡는 일은 식은죽 먹기였다.

그런데, 인간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만드는 로봇들에게서 피할 수 없는 치명적 단점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바로 ‘관절염’. 예를 들어, 바삭한 튀김을 만드는 로봇이 튀김 장인의 손놀림을 흉내낸다고 해보자. 절묘한 리듬으로 튀김에 밴 기름을 털어내는 장인의 움직임을 재연할 수는 있겠지만, 세포가 재생되는 유기체가 아니라 베어링과 모터가 마모되는 로봇에게 복잡한 움직임은 부품 마모를 가속화하는 지름길에 다름 아니다. 인간조차 나이가 들면 관절이나 연골의 마모 속도가 재생 속도를 따라잡으며 관절염에 시달리는데, 로봇은 오죽하랴. 전에 본 적 없는 저마모 부품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인간을 흉내내는 로봇은 관절염으로 인한 부품 교체 비용 때문에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기계를 흉내낸다면
로봇 관절염은 인간 요리사를 로봇으로 대체하는데 있어 큰 문제다. 로봇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 맞지만, 비싼 부품을 교체해야만 하는 빈도가 잦아진다면 결국 하루에 8시간 근무하고 퇴근하는 인간을 쓰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어링처럼 마모되는 부품을 개선한다고 한들, 거기엔 물리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럼 어떻게 하나. 로봇은 인간이 아니니까, 로봇의 문제는 로봇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다. 로봇이 인간을 흉내내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로봇을 흉내내는 거다.

튀김 장인이 튀김옷의 기름을 털어내는 걸 로봇으로 구현하는 대신 로봇의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방식으로 기름을 터는 비인간용 도구를 마련하거나, 심지어 비인간의 방식으로 요리를 하는데 적합한 식재료를 새롭게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기름을 털듯 상하로 튀김 바구니를 움직이는 대신 특정 주파수로 진동하는 바스켓에 담았을 때 기름이 잘 배출되는 밀가루 반죽의 배합이나 거기에 들어가는 물의 경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로봇용 식재료는 외려 인간의 손을 타면 맛이 떨어질지 모른다.

인간이 사물의 언어를 익힐 때
우리는 이미 은연중에 사물의 언어를 익히고 있다. 인식률이 떨어지는 휴대전화의 음성 인식 알고리즘이 잘 알아듣도록 기계적인 말투나 어순으로 또박또박 말할 때, 도어락의 비밀 번호를 누르고나서 몇 초쯤 지난 뒤에 문을 열면 한 번에 열리는 지 익힐 때, SNS에 올라가기 딱 좋은 구도로 스스로를 사진 찍어 박제할 때, 원하는 검색 결과를 얻기 위해 검색 엔진에 어떤 식으로 검색어를 입력해야 하는지 감각을 익힐 때, 우리는 사물을 인간에 맞추는 대신 우리를 사물의 언어에 맞춘다. 그리고 이렇게 익힌 사물의 언어는 다시 인간의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당신의 사진첩에는 인간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아름다운 이미지보다 문자와 사물 인식 알고리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인식하기 편리한 이미지들이 잔뜩 들어있을지 모른다. 사각형 그리드로 이뤄진 이미지 기반 SNS 피드에서는 분명 좋아보였는데, 실제로 방문했을 했을 땐 실망 뿐이었던 전시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전시 공간을 구성한 디자이너가 자기도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의 시선을 탑재한 채 공간을 디자인했는지 모른다. 스마트폰 필터를 적용한 내 모습을 보다 문득 거울을 봤을 때 외모가 어딘가 이상한 것 처럼 느껴지는가? 당신은 SNS에 의한 신체 이형증(dysmorphia)를 겪고 있다!

이제, 우리의 언어를 만들 시간
점차 우리의 언어는 사물의 언어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대화는 오픈AI가 개발한 인공지능 모델인 GPT-3 기반의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 DALL-E 2에게 효율적인 명령어를 내리는 것과 같은 문장으로 채워지게 될 지도 모른다.

“우울한 기분, 시간대 오늘, 흐린 하늘, 가장자리에 음영 효과, 극사실주의 기법.”
“하얀 조명의 현대미술 전시공간, 목재 가벽, 바닥 노출 콘크리트, 회색.”
“하얀 벽 ⅘ 높이에 정사각형 LED. 현대미술.”
“검은 상자, 플라스틱 패턴, 바닥에 흙과 자갈.”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고 발화되는 사물의 언어는 제약 투성이다. 이 언어는 전혀 새롭지 않다. 이것은 전적으로 귀납적인 언어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참조 지점을 조합한 것일 따름이다. 요컨대 이 언어는 있을법한 것, 그럴싸한 것을 생성하는 기제에 대한 입력과 출력일 뿐이다. 이것을 새로운 언어로 착각했다간 누군가 자의적으로 알고리즘을 수정했을 때 한 순간에 언어를 상실할 위험마저 존재한다. 업데이트와 보안 패치를 놓치는 순간, 내 언어라고 착각했던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의 언어를 만들 시간이다. 이 언어는 사물 인식 알고리즘이 (아직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언가, 분명 음악이지만 음성 인식 알고리즘이 ‘정의할 수 없습니다'는 메시지를 출력하게 하는 어떤 것, 나와 동료에게는 소통의 수단으로 쓰이지만 제대로 수치화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것, 따라서 미리 규정된 틀에서 보았을 때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 무엇, 기계 일꾼 전성시대의 로봇과 인간을 흉내내는 기계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듯 보이는 어떤 것을 통해 만들 수 있다. 이 언어는 대체로 보편적이라 할 수 없고, 그 어휘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소통이 이뤄지는 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심지어 이 언어는 오로지 나와 수신자 두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은 우리의 언어를 만들 시간이다. 만약 당신이 서울이나 광주의 전시장에서 웹사이트에 접속해 이 문장에까지 이르렀다면, 당신 눈 앞에 펼쳐진 광경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관람객 입장에선 다소 일방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일종의 생성 과정에 있는 일종의 새 언어의 편린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당신은 여기 이 사물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 방식이 반드시 지금까지 당신이 구사해왔던 언어에서의 ‘대화’에만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잊지 말자.

*이번 전시는 사가:코러스 1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