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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글씨, 검은 픽셀

2022년 7월 7일 – 2022년 7월 31일
00시 – 24시 (월, 화, 수요일 휴관)
사가

작가: A-P-P, 권욱, 길다래
기획: 신효진
디자인: 윤현학
주관: 사가
후원: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종이 위에 흰 글씨는 보이지 않는다. 텔레비전 속 검은 픽셀 역시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흰 글씨와 검은 픽셀은 분명 존재한다. 전시 «흰 글씨, 검은 픽셀»은 일상을 스치면서 감각하고 기록된 수많은 흰 글씨와 검은 픽셀에 집중한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보고 있음에도 보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진부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수많은 회색 장막들.

전시장 속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흰 글씨와 검은 픽셀 속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눈과 머리와 피부를 통해 지각되는 텍스트와 이미지들. 그것은 노동의 현장일 수도 있고 차별의 언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굳건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말일수도, 혹은 격렬하게 체계의 개편을 꾀하는 외침일 수도 있다. 흰 글씨와 검은 픽셀은 우리의 삶에 밀착된 풍경을 재현한다. 그러나 이미지와 텍스트가 중첩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아카이브의 기능을 넘어 또 다른 현상과 비전을 지시한다. 이면 너머에 일렁이는 위로와 저항의 기록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또 다른 거울과도 같다.

거리 투쟁의 아카이브 A-P-P(The Archive of Public Protests)는 기존 미디어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이미지와 영상으로 기록한다. A-P-P가 주력하고 있는 아카이브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행동주의에 관한 시각적 흔적을 누구에게나 전달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이 사진, 영상, 도큐먼트는 선택된 ‘진술들’만으로 구성된 ‘담론’의 체계를 흔들기 위해 수집하고 축적된다. 그리고 이를 널리 퍼 나르기 위해 노력한다. A-P-P가 쌓고 있는 흰 글씨와 검은 픽셀은 투쟁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에서 나아가 파편적으로 지각되고 수용될 수밖에 없는 한계 지점을 드러내며 거대한 권력에 저항한다.

권욱은 소수자의 공간에 집중하여 검은 픽셀을 직조한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급변하고 있는 게이 컬처의 중심지인 종로 익선동. 단일하고 거대한 논리에 의해 타자화된 이 공간을 치밀하게 기록한 ‹다다-익선›은 도시사 속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정된 창을 통해 고객을 맞이하던 작품 속 게이바는 이제 볕이 가득한 쇼윈도 속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감춰지고 배제된 공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길다래는 일상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다양한 매체로 드러낸다. 상처를 주는 친한 친구의 지나가는 말, 건널목 앞에서 목도한 젊은이의 모습 등 매 순간 파생된 감각들은 각가지 오브제로 재탄생된다. 사소하고 하찮게 여기지만 존재하는 것들.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시된 이미지와 텍스트는 단상의 포착에서 나아가 우리네 삶이 가지는 다층적 풍경을 담아내며 “웃픈”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하나같이 기억의 상흔을 담고 있는 흰 글씨들. 그것들이 하나의 공간에 수렴되었을 때 슬픔은 범람하여 굳건함으로 변질된다. 매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버드나무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