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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led City

2022년 6월 16일 – 2022년 6월 26일
13시 – 19시 (휴관 없음)
사가

작가: 얄루
기획: 박희정
디자인: 유나킴
주관: 사가, 쉬
후원: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미디어아티스트 얄루(Yaloo)는 작업 초창기부터 미역으로 대표되는 해조류의 시각적/미적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비디오 프로젝션 및 몰입형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해왔다. 사가 × 쉬 공동 주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천에 위치한 영상 예술 연구/창작 공간 쉬에서 열린 지난 전시 «Seaweed Adventures»에서는 동명의 작업 ‹Seaweed Adventures›(2019)와 ‹Homo Paulinella›(2020)를 통해 과거와 미래, 인간과 비인간의 매개로서 해조류의 여정을 뒤돌아보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신작 ‹Pickled City›는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물에 잠긴 근미래의 도시와 해양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사변한다.* 일종의 수중 도시인 ‹Pickled City›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된 것은 바로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이다. 백제 왕실의 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되었다는 금동대향로에는 인간의 형상과 함께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코끼리, 멧돼지, 호랑이, 원숭이, 악어와 같이 실재하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면수신, 인면조신 등 설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존재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Pickled City› 역시 신체 기관이 단순화된 캐릭터, 특정 기관만이 발달한 생명체, 미래 재생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해조류, 물가의 모래들이 특정 성분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만들어낸 결석인 고곳트(gogotte) 등 인간/비인간이 나란히 공존하고 있는 생태계를 상상한다.

얄루가 3D 모델링을 통해 수중 도시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많이 참조한 것은 도시 곳곳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이다. ‹Pickled City› 속에는 소위 ‘개성없음’으로 여겨지는 홍콩과 도쿄, 서울 등 아시아 인구밀집도시에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건물과 같은 건축 구조물들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손님이 끊겨 쇠락한 아케이드 상가, 반쯤 뜯겨나간 철거 중인 건물이 드러내 보이는 철근들, 건축 현장에 설치된 비계 등 우리가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미지들이 ‹Pickled City›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SF영화와 게임에서 미래의 모습은 아시아 거대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처럼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Pickled City›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며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도시 구조체이다. 작가는 김훈예 작가와 협업한 전작 ‹Homo Paulinella›에서 물 속에서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살아가는 신인류 ‘호모 폴리넬라’를 포스트휴먼의 하나의 모델로서 제안한 바 있다. ‘호모 폴리넬라’와 ‘Pickled City’ 모두 마치 수중에서도 호흡이 가능한 생명체처럼 물 속을 유유히 유영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물 속은 우주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두려움과 경외가 뒤섞인,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아닌 인간/비인간이 공존하는 미래 생태계는 우리에게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최근 발표된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고 빙하가 예상보다 빠르게 붕괴한다면 해수면은 이번 세기 안에 2m, 2150년에는 5m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남서태평양 섬나라들의 평균 해발고도가 2m가 되지 않으니 현재 속도대로 해수면이 상승한다면 그 섬들은 세기말에 거의 물속에 가라앉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