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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2022년 1월 6일 – 2022년 1월 30일
13시 – 19시
사가
 
작가: 영호
글: 신양희
디자인: 이윤성
주관·주최: 사가

《영호》는 영호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장은 전체적으로 바버샵*처럼 연출되었다. 이용사면허증을 보유한 작가는 전시 운영 시간 관객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으며 이야기 나누는 장소로도 이 공간을 사용한다. 미대를 졸업하고 작가는 오랜 시간 생활과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미술 인력을 자처해야 했고, 작년 여름에는 이용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는 작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쓸모를 고민하면서 행한 일이었다. 특히 작가는 이용사면허증을 취득하고 이발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큰 성취와 보람을 얻게 된다. 이 일은 전시라는 맥락으로 이어져 두어 번 바버샵을 꾸리고 이발 일을 전시장에서 실현했다. 이번 개인전도 외면적으로는 그 활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순수이용미술〉(2022) 구역은 이발 의자와 이발에 필요한 도구와 장비가 진열되어 기능적 역할을 담당하고, 이외의 스펀지 좌대 및 공간과 벽에는 작가가 자신만의 바버샵을 개업한다면 어떤 공간을 꾸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에 작가로서의 미적 조형과 개인으로서 취향이 반영된 상징물, 기록물, 수집품, 과거 작품들을 함께 배치하여 영호가 한 것, 본 것, 보내온 시간을 관통한다. 작가는 중첩된 시간과 장소, 생각과 이미지, 자신의 행위들을 꺼냄으로써 과거를 마주하고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미래를 열고자 한다.
 
우선 〈두부〉(2022) 정물사진은 새롭게 첫발을 딛고 선 작가가 선택한 사물 이미지로 두부가 가진 상징성을 직관적으로 따른 것이다. 시작과 갱생은 첫 개인전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이자 자학, 결벽증, 강박증, 죄의식과 같은 생각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왔던 그 시간을 드러내 보이면서도 이를 털어내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비누1〉(2022), 〈비누2〉(2022), 두 개의 라이트 박스에도 유사한 맥락의 상징적 요소가 스며있다. 마음의 강박을 씻어내는 대리물인 비누와 나쁜 마음을 반추하는 성스럽고 선한 빛은 교화와 회복이라는 의미를 담는다.
 
사물 이미지와 상징물에 반사된 의미는 〈웃긴 표정 상상하는 노래〉(2020)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선율이지만 내면의 울림을 반영하는 멜로디에 낮게 읊조리는 가사**는 자조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극복을 위한 송가 혹은 기도문과 같다. 이와 같은 시기 제작한 조각 작품 〈경도〉(2012) 연작은 어두운 색감과 순도 높고 응집된 질료, 단단한 형태와 유기적으로 맞물린 구조로 인해 제의적 도구나 타악기와 같은 사물을 상기하게 한다. 표현 매체는 다르지만 두 작품은 작가가 자신을 구속하고 괴롭혔던 생각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수행과 극복을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영화 스틸 컷(〈러브 익스포저〉, 〈위대한 독재자〉), 밴드의 티셔츠(핑크 플로이드, 사이먼 앤 가펑클, 브루스 스프링스틴), 사적 기록물(이용사면허증, 일자리 추천 글), 이발과 연결된 사물(사인볼, 거울, 거울 간판, 운동기구)과 이발사로 분한 찰리 채플린의 사진, 기타, 김성호의 〈김성호의 회상〉 LP판, 플레이되는 음악 등은 다른 장르 예술에 대한 관심과 그 이미지와 내용에 대한 흠모와 공감, 일과 취향이 반영된 수집물로 몽타주처럼 배치되어 작가의 경험과 시간, 기억과 장소에 대한 증거가 된다.
 
특히 밴드 브리더스의 〈Last Splash〉 앨범 재킷 티셔츠와 20주년 공연 티켓은 작가가 직접 관람했던 경험이 내포되어 있지만, 핏방울이 내비친 붉은 심장 이미지에는 바깥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신을 마주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전시장에서의 이발 행위도 개념을 시연하는 예술적인 맥락의 퍼포먼스이기보다는 작가가 관객에게 다가가고 소통하고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실제적인 행위에 가깝다.
 
결국 영호가 한 것, 본 것, 보내온 일련의 시공간의 증거물들은 그가 살아온 궤적 안에서 중층적인 계열을 이룬다. 그렇지만 그것의 정체 혹은 실체가 뚜렷한 내용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불안, 병, 강박, 불경한 생각, 죄와 같은 부정성은 외부 세계,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된 것이거나 자신을 가두고 억압하는 기제였지만 작가는 승화하고 정화하는 방법으로 이를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이발 행위도 관객들의 새로운 시작과 정화의 순간을 나누기 위한 행위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이해하고자 했다는 것을, 대상들에 대한 애정을 증명함으로써 자기와 화해하는 시공간을 열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 바버샵은 이발소라는 기능을 하는 곳이지만 이발사의 취향이 반영된 음악, 소품과 기물을 통해 고객이 그들의 취향과 취미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 “숨소리를 따라 숨 쉬었습니다 / 말끝을 따라서 말하였습니다. / 우는 표정 상상하였습니다 / 무표정을 흉내 내었습니다 / 무표정은 가소로운 것” “이 노래는 나를 꾸며주는 노래 / 손을 세 번 씻지 않는 노래 / 숨을 참지 않는 노래 / 죄의식을 목 조르는 노래 / 죄의식 흘려보내는 노래 / 웃긴 표정을 상상하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