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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er Zone
 
2021년 12월 2일 – 2021년 12월 31일
13시 – 19시
사가
 
작가: 이해반
기획: 권태현
협력: 사가
공간 디자인: 정진욱
그래픽 디자인: Studio165
후원: 강원도, 강원문화재단

Buffer Zone은 완충 지대를 말합니다. 완충 지대가 있다는 것은 서로 힘을 견주는 양쪽이 있다는 것을 뜻하죠. 그곳은 양쪽의 힘이 완화되는 공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동시에 그곳은 두터운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양쪽의 긴장으로 가득 들어찬, 쉽게 가로지를 수 없는 경계의 지대. 이해반은 그런 공간을 다뤄왔습니다. 한반도의 DMZ나 북한과 중국의 국경 지대를 직접 그려내기도 했죠. 그 경계를 넘어가는 것을 상상하면서, 혹은 출렁이는 경계에 몸을 맡겨 가면서.
 
완충 지대는 마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곳은 놀라운 힘으로 자라나는 식물들과 다양한 동물들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형상은 흔치 않지만, 인위적인 형상은 종종 출몰합니다. 알록달록 눈에 띄는 삼각형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모양들. 인간이 없는 공간의 그 인위적인 조형물들은 서로 다른 영토에 속한 인간들이 그곳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지뢰를 심어놓은 영역이나, 넘어가면 안되는 선을 표시한 것입니다. 인간이 보았을 때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맴돌지만, 그곳에 사는 동물들은 유유히 걸어서, 혹은 훨훨 날아서.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이를 넘나듭니다.
 
이해반은 이번 작업을 통해 특정한 장소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전시 공간 자체를 완충 지대로 뒤바꾸는 것을 시도합니다. 《Buffer Zone》은 주어진 전시 공간을 감싸는 파노라마를 펼쳐 놓습니다. 파노라마는 하나의 시점을 상정하는 풍경화와 달리, 여러 시점을 이어붙여 만들어집니다. 다중의 시점을 가지는 파노라마는 관객의 위치를 미리 설정하지 않습니다. 파노라마를 통해 여러 사람이 하나의 같은 이미지를 두고서 제각각의 위치와 시점에서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는 공간이 열립니다.
 
《Buffer Zone》에서는 하나의 선에 놓인 양극단의 긴장감뿐만 아니라, 훨씬 다채로운 힘의 관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를 향해 만들어 놓은 경계, 나아가 인공과 자연의 경계, 혹은 이미지와 세계 사이의 경계, 때로는 서로 다른 시점들 사이의 경계, 그리고 서로 다른 물질들 사이의 경계까지. 여러 겹의 경계 지대가 여기에 쌓여서 완충되고 있습니다. 어디 한쪽으로 딸려가지 않고, 다른 힘이 얽혀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시공간을 상상합니다. 단단한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곳에서는 이리저리 요동치는 힘의 관계 속에서 파악됩니다. 이해반의 그림에서는 바다가 저 멀리 견고한 선을 이어나가고, 가까이 있는 산이 오히려 파도처럼 요동칩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팽팽한 긴장감 사이의 줄을 타볼 수도 있고, 그 사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닐어 볼 수도 있습니다. 힘이 가득 들어 차 있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지만 그렇기에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을 들여보세요.